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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만능주의와 대학-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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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균관대분회 작성일23-02-08 15:35 조회2,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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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30일 교육부는 ‘대학 설립 운영 규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이 규정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의 심사와 의결 없이 행정부 단독으로 법령 공포까지 끝낼 수 있는데, 현재 별도의 공청회도 없이 인터넷과 팩스 등만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규정은 1996년 제정되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대학 설립을 활성화하여 대학 사회에 ‘자율’과 ‘경쟁’을 도입하자는 취지를 내세워 추진하였는데, 대학 자산과 부지, 건물, 교원 등을 일정한 기준 이상으로 확보한 설립자에게 곧바로 대학 설립 인가를 내줘야 하는 이 규정의 특성을 당시에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라고 불렀다. 이 규정으로 1997년 20개, 1998년 7개 등 2011년까지 63개의 대학이 인가되었고, 심지어 낮은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대학들도 이 규정 아래에서 설립 인가를 받기도 하였다. 지금 대규모 미달 사태를 야기하는 대학 정원은 이때 이 규정 하에서 폭증한 것이다. 대학 설립의 기준이 낮아지자 당초의 도입 취지라던 자율과 경쟁은 ‘비리’와 ‘부정’의 모습으로 실현되었고, 일부 대학은 구성원과 지역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안기며 폐쇄 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당시 준칙 제정 위원이었다. 규정의 장본인이 다시 등장하여 ‘자율’과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규정을 손보자고 하는 것이다. 설립되면 안 되는 대학이 설립되게 만든 규정을 손보아서, 운영되면 안 되는 방향으로 대학을 운영시키려고 한다.

학생 1인 기준 확보해야 할 면적을 14㎡ 이하로 낮추고 남게 되는 공간을 수익용으로 활용하도록 허용하며, 건물 임대는 물론 임차도 허용하자고 한다. 콩나물 강의실 악화도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만, 교육용 공간과 수익용 공간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교비와 재단 자산이 얽히고설키는 복마전도 열릴 것이다.

기존 규정에서는 겸임 교원을 교원 정원의 최대 5분의 1까지 허용하였는데 이를 3분의 1로 완화하자고 한다. 연구와 강의 환경 악화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대학들에서는 비정규 교수를 양산하여 인건비를 절약할 틈이 더욱 커졌다고 환호할 것이다. 수익용 기본 재산을 연간 학교 운영 수익 총액만큼 확보하도록 강제했던 것을 등록금 수입의 2.8%만 지원하면 확보 재산을 따지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하자고 한다. 수익용 기본 재산을 처분하고 훨씬 적은 액수만 대학에 지원해도 학교 법인을 운영할 수 있게 된 재단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지금 교육부에서 내세우는 자율과 경쟁, 규제 완화는 공동체의 영역을 시장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오래된 구호일 뿐이다. 공공성이 관철되어야 할 영역에 시장 논리가 침투하면, 이익은 장사꾼들이 뽑아 가고 부실과 비리의 폐단만 공동체가 떠안게 된다. 연구와 교육으로 공동체에 기여해야 하는 고등교육기관을 그동안 시장 논리로 이해하고 정책을 펼쳐왔기에, 대학은 부실화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의 짐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이주호 교육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시장 논리를 강화하여 고등교육을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넣고 있다. 현재 입법 예고된 규정 완화는 이미 부실화된 대학에 복마전까지 만들어주는 일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주도해 온 대학 평가를 대학 측 이익단체인 대교협에 맡기고, 경영 평가는 사립대학 이익단체인 사학진흥재단에 맡길 것이며, 지역 혁신 중심 대학(RISE)이라는 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국립대학을 사립대학 내지 도립대학으로 전환하며, 고등교육 관련 책임을 지자체에 이양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정책의 갈래는 많지만 모든 갈래는 고등교육 공공성 파괴의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시장 만능주의는 단지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이념이 아니다. 장사꾼이 모든 이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공공성을 철저히 파괴하자는 이념인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 정책은 대학을 파괴하고, 연구와 교육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시장 만능주의 정책으로 망가뜨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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